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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고려 역사 배경 결과

by 아어흥 2023. 12. 22.

천추태후 고려 역사 배경 결과

 

천추태후

배경

고려는 1009년 강조의 난으로 왕위 찬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014년, 최승로(崔承老)의 개혁으로 정권이 안정을 되찾았으나,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22년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千秋太后)가 섭정으로 나서면서, 고려는 다시 한번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섭정

천추태후는 섭정으로서, 자신의 아들인 목종을 꼭두각시 왕으로 만들고, 자신은 실권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측근인 김치양(金致陽)을 중용하여, 중앙 귀족들을 제압하고, 지방 호족들을 견제했습니다.

천추태후는 또한, 고려의 전통을 폐지하고, 친거란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천추태후는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거란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는 등, 거란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를 펼쳤습니다.

결과

천추태후의 섭정은 고려 왕조의 기틀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천추태후의 친거란 정책은 고려의 민심을 분열시켰고,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결국, 1009년 강조의 난에 이어, 1033년 천추태후의 아들인 목종이 갑자기 사망하자,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은 폭발하여, 최충헌(崔忠獻)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역사적 배경

천추태후의 섭정은 고려 중기의 정치적 혼란이 배경이 되었습니다. 고려는 태조의 개국 이후,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10세기 후반에는 중앙 귀족인 이자겸(李資謙)이 정권을 장악하여, 지방 호족의 반발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자겸의 정권은 1014년, 최승로(崔承老)의 개혁으로 무너졌지만,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추태후가 섭정으로 나서면서, 고려는 다시 한번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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